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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오만하게 제압하라 - 페터 모들러 /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 여자가 살아가는 법

by 박종인입니다. 202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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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바탕에 고양이 한 마리가 정장한 남자를 한 발로 누르고 있는 책 표지에반칙이 난무하는 세상, 여자가 살아가는 법이란 카피를 보면서 젠더 편향의 글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함께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의 본능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함에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또한 이 책은 현실에서 겪었던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당사자가 느꼈던 감정을 분석하고 적절한 해답을 찾아가는 사례들의 모음이다.

책의 저자 페터 모들러(Peter Modier)는 법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기업 회생, 경영 컨설팅, 잠재력 평가 등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여성 직장인을 위한 오만 훈련(Arroganz-Trainings)’의 개발자로 2016년까지 약 2000명의 여성 리더가 그의 훈련 세미나에 참여했으며 현재는 차이에 의한 이익 : 모들러 방사의 코칭법이라는 교육과정을 통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책에 소개되는 많은 상황극 중에서 맘에 와 닿던 두 가지 사례와 의사소통의 단계적 모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대학에서 강의와 조교들을 관리하는 30대 초반 여성인 비써 박사는 학부생 조교 메르코브 때문에 고민이다. 그는 말도 없이 일주일씩 결근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타나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대충 인사를 하고 배낭을 던지듯 내려놓고 자기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건성으로 훑어보곤 했다. 비써 박사는 그런 메르코브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수차례 상황 재현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영역 점령을 무시한 채 성급하게 말로만 풀려했다는 것이다.

 

마침내 비써 박사는 영역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메르코브가 조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재빨리 손을 들어 그를 멈춰 서게 했다. 그리하여 메르코브는 그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비써 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보기만 했다. 그 후 지난 한 주 동안 어디 있었는지, 왜 관리자인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어째서 항상 다른 동료들이 당신의 일을 대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끝으로 비써 박사의 짧은 명령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됐어, 그만 가서 일봐.”

비써 박사는 영역 점령을 통해 자신이 상사임을 명확히 확인시켜 줌으로써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갈등 상황에서의 의사소통 단계별 모형을 간단히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이토크(High Talk)에서는 논리적인 근거가 제시되고 말이 서로 통해야 한다. 의견 교환, 내용 토론, 세부적인 정보 교환이 여기에 속하고, 찬성과 반대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언어적 표현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수준에 있다. 스몰토크(Small Talk)는 합리적인 주장이나 토론과 상관이 없다. 같은 언어적 단계지만 여기서 오가는 메시지는 사적이고 주관적이며 때로는 감정적이다. 날씨, 패션, 스포츠, 이런저런 수다 등 일상의 사소한 일들이 다뤄진다. 일반적인 의미의 환담도 여기에 속한다. 남자들끼리 흔히 주고받는 비난이나 욕을 듣게 된다면 그저 스몰토크일 경우가 많으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다. 무브토크(Move Talk)는 말이 필요 없다. 하지만 효과는 강력하다. 몸짓과 표정, 시선, 태도, 공간적 거리의 변화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세와 동작이 큰 의미를 갖는다. 지위를 명확히 하는 오만은 이 단계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비언어적 단계(무브토크)의 공격을 받았을 때, 언어적, 지성적 방어(하이토크)는 아무 소용이 없다. 똑같이 비언어적 단계로 방어해야 한다. 그리고 언어적, 지성적 단계(하이토크)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똑같이 이 단계로 방어해도 된다. 하지만 언어적, 비지성적 방어(스몰토크) 혹은 비언어적 방어(무크토크)가 더욱 효과적이다. 이는 윤리나 정치적 올바름과 무관하며 가치의 전달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을 기억하고 자꾸 써서 몸에 익혀야 할 것이다.

조립식 건축으로 유명한 어느 기업가와 결혼한 피셔는 남편 회사의 경영진이 되어 열심히 일했고 회사는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쉰 살이 되었을 때는 남편과 공동 대표가 되었고 그 후 회사 분위기도 바뀌고 대외적인 평판도 좋았다. 그러나 예거라는 노령의 가구 기술자의 태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예거는 기술자의 능력만 보면 그 분야의 거장이었다. 그러나 직원들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고객이 있든 없든 예거는 아무에게나 고함을 쳤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거를 싫어하였다.

 

피셔는 상황극을 통해 해결점을 찾아 나셨다. 먼저 예거가 사무실에 들어와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피셔는 예거(대역)가 사무실 문을 열자 벌떡 일어나 문 앞까지 가서 그를 맞았고 친절하게 자리를 권했다. 예거(대역)는 책상에 손을 올리며 피셔에게 물었다. “요즘 어때요?” 피셔는 자기 기분을 이야기했다. 당신의 고함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지 아느냐, 더는 참기 힘들다, 우연히 찾아온 고객들에게 창피하다. 어떤 수습생은 모욕감마저 든다더라. 상황극은 중단되었다. 예거(대역)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계속 더 길게 얘기해도 괜찮아요.” 피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여자 관찰자들 역시 예거의 반응에 당황했다. 피셔가 그렇게 당당하고 권위 있게 말했는데, 어떻게 이 남자는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상황을 분석해 보면, 예거(대역)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도 피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예거 1점 획득) 피셔는 그를 친절하게 맞았고 책상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했고 그가 앉은 후에 자리에 앉았다.(예거 3점 획득) 피셔는 심지어 그가 책상에 손을 올려놓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영역 점령을 허락했다.(예거 1점 획득) 그런 다음 예거는 직원 대하듯 피셔에게 요즘 어때요?”라고 물었다. 이것을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피셔는 예거에게 다시 3점을 잃었다. 피셔는 정말로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였다. 그런데 왜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을까? 피셔가 남자와 마주했으면서도 마치 여자와 대화하듯 했기 때문이다. 피셔는 처음부터 지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다음 상황극을 맞이했다.

 

예거(대역)가 문을 열었고 피셔는 책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예거(대역)가 들어서려 할 때, 그녀는 그를 빤히 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잠깐만요.”

그리고 한참 동안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예거(대역)는 문 옆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마침내 그녀가 그를 불렀다.

 

자리에 앉으세요

예거는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을 수 없었다. 책상 위에 전화기, 일정표, 노트북 등 물건들이 가득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피셔는 양팔을 넓게 벌려 책상 위에 올리고 기구 기술자에게 물었다.

 

예거 씨, 이 회사 대표가 누구죠?”

“사장님이시잖아요”

침묵. 피셔는 다시 물었다.

 

누가 당신의 상사죠?”

예거(대역)는 불안해졌다.

“사장님이시죠, 당연히.”

피셔는 예거의 눈을 똑바로 보며 과장해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당신의 상사로서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리겠어요.”

예거(대역)는 집중해서 들었다.

 

직원들에게 고함치는 걸 당장 그만두세요.”

침묵.

 

알아들었어요?”

예거(대역)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요?”

예거(대역)는 시선을 깔고 중얼거렸다.

“알아들었어요”

피셔는 계속 그를 빤히 보다가 끝으로 말했다.

 

그럼 나가서 일 보세요.”

예거(대역)는 사물실을 나왔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나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 속에 남녀의 역할은 분담되었고 각자의 특성에 어울리도록 생활의 양태 역시 진화되어 왔다. 남성들이 표현하는 언어는 여성들의 사용언어와 차이가 있다. 남성들의 권력지향적인 의사표현에 비해 여성들의 부드러운 언어는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많은 이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누가 먼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

 

또한, 이는 여성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남성중에서도 대결적 구도를 즐겨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의사관철 능력과 최고가 되려는 권력의지라면 지금 마음의 공구함에서 약간의 오만꺼내보는 것이 어떨까? 책 속에서 다룬 많은 사례를 보면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불쾌감은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이 나처럼 불쾌할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자 이제부터 나의 감정을 단호하게 드러내는 시도를 해보자. 이것이 상대방에게 정확한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음을 상기하면서 다소 오만하게 상대를 제압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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