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 장하준
가끔 생각해 오던 질문이 있다.
우리나라는 왜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까?
일본과의 적대적 관계는 물론 북한에게도 맘 컷 손을 내밀지 못하는 현실에 깊은 한숨을 쉰 것이 한두 해가 아니었다.
패권을 가진 강대국들의 이익 논리에 상대적 약소국들은 언제나 약소국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 국제 질서이며 권력자와 지식인의 변일까?
여기 저자 장하준 교수의 다른 주장이 있다. 현 선진국들의 발전 과정을 통해 시대적 현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경제사를 기반으로 각국의 발전 유형을 바라보며 각국의 정책 및 제도를 분석하였다. 저자가 바라본 선진국들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행태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글의 흐름에 따라 저자의 글을 인용하여 내용을 요약해 보면,
지금의 선진국들은 실제로 어떻게 부유하게 되었을까?
위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은 선진국들이 최근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서 현재의 위치에 이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 시기에 유치산업(Infant Industry) 보호나 수출 보조금 지원과 같은, 근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에 의해 금지되거나 비판받는‘바람직하지 못한’무역 및 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게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를 권고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이전에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이용했던 제도나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들이 국제 경쟁 속에서 상대적 위치에 따라 정책 방향을 바꿔 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따라잡기 기간’에 있는 동안 현 선진국들은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으며, 선진국들이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였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특허권 및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였다. 그러나 일단 자신들이 선진국 대열에 오르면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숙련된 노동 인력 및 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허권 및 상표를 강력히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된 것이다. 18세기에 그 어느 국가보다 강력한 유치산업 보호를 실행하였던 영국이 19세기에는 자유 무역의 장점을 역설하고 나서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현재의 개발도상국에서 볼 수 있는 보호주의보다 현 선진국들이 과거 사용했던 보호주의의 수위가 매우 낮았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현재의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생산성 차이가 과거 선진화의 수준에 차이가 있는 현 선진국들 사이에 나타났던 생산성 차이보다 매우 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현 개발도상국들은 생산성이 차이가 더욱 커진 지금에 와서는 단지 과거와 같은 수준의 보호주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도 현 선진국들이 당시 부과했던 것보다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 관료 제도와 사법권의 역사, 재산권 보호 제도의 역사, 기업 지배구조 제도의 역사, 금융제도의 역사, 사회복지 제도와 노동 제도의 역사와 개발도상국들의 제도 발전의 역사를 동등한 발전 단계에서 비교할 경우 일반적으로 당시의 현 선진국들이 제도적인 측면에서 현 개발도상국들보다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현 선진국들이 경제 개발 초기에 이용했던 정책 및 제도들은 우리가 흔히 그들이 사용했다고 여기는 정책 및 제도들과는 전혀 다르며, 현 개발도상국들에게 지침으로 제시되거나 심지어 빈번히 강요되기까지 하고 있는 정책 및 제도들과는 더더욱 차이가 크다는 점을 설명한다.
개발도상국의 적극적 산업·무역·기술정책 실행을 제약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합의는 영국을 비롯한 여타의 현 선진국들이 반독립 국가들에게 강요하였던 다양한 ‘불평등 조약’의 현대판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해 개발도상국들이 따라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고찰을 통해 드러나는 결론은 분명하다. 현 선진국들은 자신보다 선진화된 국가를 따라잡기 위한 노력 과정에서 유치산업을 촉진시키기 위해 개입주의적 산업·무역·기술 정책을 사용했다. 그 형태와 중점 사항은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현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현 개발도상국들과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을 때 갖추지 않고 있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에게 이중 잣대를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불필요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적 기준’에 맞는 재산권과 기업 지배구조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국제적 수준의 변호사들과 회계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현 발전 단계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더욱 절실할 수 있는 교사나 엔지니어의 양성에 소요될 자금이 어쩔 수 없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 선진국들은 정책 분야뿐만 아니라 제도 분야에서도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제도’를 권고하는 행위가 사실상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변화되는가의 여부는 권고된 해당 제도들의 정확한 형태와 질, 그리고 해당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주어지는 시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면에서 최근의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현 선진국들의 제도 개혁을 위한 압박은 그리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의 강압적 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장하준 교수의 의견이 있다.
먼저 선진국들의 경제 발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이것은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에게 합당한 정책과 제도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현 선진국들이 개발을 진행 중이던 시기에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던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개발도상국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양해해)주어야 한다. 적극적 산업·무역·기술 정책이 때로는 관료적 형식주의나 부정부패로 변질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책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또는 현 선진국들이 제공하는 금융 지원에 포함되어 있는 정책 관련 조건들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싶다. 각국의 경제 발전 단계 및 구체적인 여건을 감안해서 어떤 국가에게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조사하여 적합한 지원을 해야 한다.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의 발전 단계 및 그 밖의 제반 여건들에 더욱 알맞은 정책과 제도를 채택할 수만 있다면 이들은 1960~70년과 같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결과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무역과 투자의 기회를 증가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선진국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현 선진국들이 지금의 부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자국의 보호정책 때문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개방을 강요하는 것은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처럼 비도덕적인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작금에 세계 동향을 보면 경쟁하듯 늘어나는 자국 우선주의에 세계 질서는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장하준 교수가 책 말미에 써놓은 것처럼 선진국들의 소탐대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의 흐름이 패권에 의해 진행된다 하더라도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를 죽이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막연하게 접하던 내용을 구체적인 사례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논리적으로 인식한 기분이다. 여러 번에 걸쳐 읽을 만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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