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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예루살렌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by 박종인입니다.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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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독일 태생의 아이히만은 1932년 나치당에 가입하여 친위대로 활동한다. 그는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 책임자로 일하게 되면서 유대인 학살의 원흉으로 낙인찍힌다. 나치 정권의 몰락 후 이스라엘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던 그를 납치하여 이스라엘 법정에 세우고 심문을 시작한다. 아이히만은 사형을 선고받고 죽임을 당하지만, 그는 떳떳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이 책은 저자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여 1963년에 잡지 뉴요커에 실으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수정과 개정을 반복하면서 완성된 보고서이다.

 

내가 책을 통해 숙고하고자 했던 것은 악의 평범성이다.

먼저 악행이란 무엇일까? 저자가 이야기하는 악행은 사고하지 않은 것,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 즉 보편적이지 못하고 불합리한 조건임에도 과정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는 부작위를 말한다. 도덕성을 상실한 순종,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주장, 이성을 마비시키는 믿음, 맹목적 복종하는 애국심 등은 사고하지 않거나 사고하지 못해서 생긴 대표적 결과이다.

 

아이히만은 타인 또는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또한 행위할 능력, 또는 더 잘 말하자면 도덕행위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 예컨대 그에게는 어떤 것을 말하기란 언어놀이를 하는 것과 동일했다. 그는 수행행위로서의 말하기에 대한 이해, 즉 필연적으로 발화행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아이히만의 문제는 그가 본질적으로 혼돈에 빠진 동일주의자 - 인간관계에서 차이를 알지 못하거나 차이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 - 라는 점이다.” (40)

 

그렇다면 악인의 모습은 어떨까? 실제 악인의 모습은 악이 가진 잔혹함과는 상반된 평범한 모습일 수 있다. 당시 학살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을 잔혹한 악마, 냉혈한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독일의 평범한 공무원이었으며 그저 생계유지를 위해 조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아이히만은 자신 행위의 타당성과 학살의 직접적 지시자가 아님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아이히만의 행위는 도덕성을 상실한 복종과 순종이었고 반인륜적 범죄를 초래한 최악의 원인이며 범죄의 구성요건이라 보았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382)

 

사고를 하지 않을 때, 사고할 능력을 상실한 때 악은 창궐한다. 악은 험악한 모습이 아닌 평범한 얼굴이며 사사로움에 존재한다. 따라서 사고하지 않은 복종은 선량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핵심적 유인이 된다.

 

우리는 공범인가?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했던 독일의 유권자를 대학살의 공범으로 여길 순 없다.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만행을 방관했던 그들의 방조 역시 묵인하긴 힘들다. 악행의 원인이 사고하지 않음에 있다면 비판 없이 이를 방관한 모두는 공범이라 생각된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 구성요건을 피해 가는 범죄 행위, 몰지각한 충성 경쟁, 내로남불 등 이제는 상식처럼 다가온 부조리 현상이다.

 

보편성은 내가 받을 무언가가 타인에게도 비등하게 적용되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보편적 상식, 보편적 가치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면 상대의 처지에서 지금 그것이 옳은지를 생각해보고 옳고 그름을 비판하는 것이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것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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