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평생, 이 고민 속에 살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나름의 통찰이 있으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낄 때마다 마음의 영양실조를 앓는다.
보통 우리는 내적 만족과 외부 시선을 통해 존재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편향적 선택을 한다면, 과함과 부족함의 불편함을 겪는다.
내적 만족에 몰두해 감정의 포만감에 취한다면 타인의 인정에 목마를 수 있고, 타인의 시선, 사회적 책임 등에 모든 시선을 빼앗겨 나를 소홀히 한다면 속 빈 강정처럼 공허해지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무엇이 옳고 더 값진 삶이라 정의할 순 없지만 타고난 기질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더할수록 행복과 멀어지는 것 같다.
오늘 소설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이 둘의 배분에 서툰 인물이다. 보통 유년 시절의 우리는 부모의 가르침으로 삶의 기준을 잡는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생각과 내 삶의 방향이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생각과 감정의 타협이 서툴다. 그러다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타협의 편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정체성이란 게, 지천명이 된 지금에야 그리 변덕스럽지 않지만, 여전히 사고의 리밸런싱을 하는 걸 보면, 죽는 날까지 판단의 무게추는 계속 움직일 것이다.
신학교를 중퇴한 한스는 이후에도 작업장 기계공들의 놀림거리가 된다. 소위 ‘먹물’ 출신이 기계 밥을 먹을 수 있겠냐는 비아냥이다. 아래 문장을 보면 한스가 얼마나 무리에 속하고 싶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한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이들 무리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계획된 일요일의 오락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이 솟구치기도 했는데 그것은 기계공들이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 보통 요란한게 아니라는 것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춤도 출지 모른다. 한스는 춤도 추지 못하지만, 그밖에는 할 수 있는 한 남자답게 행동하고 필요하다면 술을 마시고 약간 취해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책 242쪽)
홀로 설 수도, 무리에 속할 수도 없던 한스는 어느 쪽도 아닌 죽음을 선택한다.
“한스는 같은 시각에 이미 싸늘하고 조용하게 어두운 강물을 따라 계곡 아래쪽으로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증오와 수치, 고통도 이제는 그에게서 사라지고 검은 물결이 그의 양손과 머리카락, 창백한 입술을 간지럽히는 가운데 차고 푸르스름한 가을밤이 어둠에 묻혀 떠가는 그의 연약한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책 257쪽)
사람은 내적 만족과 타인의 인정으로 살아간다. 이 둘이 조화롭지 못할 때 나타나는 병리적 증상에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그저 받아들이던가, 타협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내적 만족에 비중을 두고 살지만, 삶의 동력이 올곧이 자족으로만 채워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다행인 것은 ‘자족과 인정’의 선택 비중이 가변적이어서 강퍅한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음이다.
살아가는 이유와 동력이 각자의 사전에 쓰인 각기 다른 해석이기에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인간의 심리가 내적 만족과 타인의 인정을 바란다는 사실은 자연법칙처럼 명확하다.
다시 한번 헤세를 칭송하게 된다. 헤세가 거장인 이유는 인간이 가지는 내재적 한계를 고민하였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의 글을 읽는 이유는 이에 대응할 통찰을 끼우기 위해서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성장소설이라 부르지만, 연령을 불문하고 삶의 동력을 고민하는 모든 이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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