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역설적 표현을 좋아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 ‘작은 거인’, ‘찬란한 슬픔’, ‘아름다운 이별’ 등, 역설은 서로 상충하는 어휘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강조하는 힘이 있다. 관성에 따라 흐르는 생각에 제동을 걸고 단어에 담긴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오늘 소개할 <텅 빈 충만> 역시, 역설을 활용해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대표적 예이다.
이 책은 1989년에 출간한 법정 스님의 수상집(隨想集)으로 일상의 이야기와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과 통찰을 담고 있다. 그중 한 편의 에피소드를 책의 제목으로 사용하셨는데,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한 해 전 신도 중의 한 분이 스님 방에 오디오를 설치해 드렸는데, 스님은 방 정리를 하면서 오디오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본인이 구매한 물건이야 누굴 주건 큰 상관이 없겠지만 선물 받은 물건은 주신 분의 정성이 있기에 그 분께 돌려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정이 아버지(선물해 주신 분)가 오디오를 설치하고 그렇게나 흐뭇해했음을 들은 터라, 깊은 서운함이 있을 것을 알고도 되돌려 보낸다. 이런 결심은 사람이나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소유의 더미가 싫어서였다. 스님은 기계적 소리가 빠진 자리에 자연의 소리를 채웠다.
“이제 내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하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 (책 74쪽)
비우는 것은 힘든 과정이다. 무언가를 비우려면 우선 필요와 불필요를 분리해야 한다. 이때 필요 이상의 욕심이 무엇인지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 결단이 매우 어렵다. 당장은 쓰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에 꼭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며 사고, 이념, 관계 등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적용되므로 그동안 가져왔던 가치관과 유지해왔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쳐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과정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동참하는 것은, 빈 공간에 채워질 더 큰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충만이다. 내면의 만족을 중히 여길수록 비움의 욕구가 강한 것은 그들에겐 이미 자연의 모든 것이 천혜의 선물이며, 우주의 주인공이 나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 본능은 채우고 준비하도록 설계돼있다. 빈틈없이 채워서 언젠가 닥칠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려 한다. 따라서 비우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본성에 역행할 훈련이 필요하다. 스님이 책 곳곳에 용맹정진하란 이유 역시, 비움이 그만큼 외면하기 쉽고 힘든 과정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텅 빈 충만>은 만족을 위한 역설이다. 결국 비우는 것이 무언가를 채우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간헐적으로 만나는 스님의 글은, 생각을 간결히 하는 도구이다. 특히 욕심으로 허우적거릴 때, 망상을 깨는 죽비가 된다.
혹시라도 당신이 끝없는 부족함에 시달리고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스님의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분명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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