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한국 전쟁 당시 20대 초반 여성의 서울살이로 전개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가장의 모습과 등장인물을 통해 전쟁이 남긴 시대의 상황을 증거하고 있다.
문학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하며, 읽고 난 후 반성의 시간을 남기는 데 그 의의가 있다는 박완서 작가의 목소리(KBS 아나운서와의 대담, 1992)를 듣고, 소설 <나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나목>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동료 의식을 되살릴 수 있는 글이다. 이 말은 당시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재미가 덜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목>은 ‘그들에게 이런 상황이 있었고,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기록함으로써 (마치 사건의 기록을 통해서 부조리를 막아내려는 역사의 노력처럼) 각 시대의 대 쟁투를 치러내고 있는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힘을 전하고 있다.
작가가 소화 시켜 사용한 어휘 중, ‘미결인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내 심리를 요약하여 정리하라면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결단이 필요하지만 이를 지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아주 짧은 평온함.
“그는 화제를 슬쩍 돌리며, 그의 눈에 상심보다 더 깊은 아픔이 지나간다.
그는 그가 해결 지어야 할 이 조그만 현실도 미결인 채 피하려고만 들었다. 나는 구태여 더 깊이 추궁하려 들지 않았다.
미결인 상태, 그 몽롱하고 무책임한 상태가 주는 휴식이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했다.” (책 353쪽)
여느 소설처럼 책을 덮은 뒤, 등장인물조차 기억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다시 소설을 찾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이를 전개하는 재미난 이야기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나목>에도 같은 이유가 있다. 며칠 후면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포탄이 떨어진 지붕의 모습과 옥희도와 태수가 마주해야 하는 오금 저린 상황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몰입 - 황농문 / 어떤 대상에 집중하여 생각(혹은 행동)의 꼬리를 물어가는 과정 (1) | 2023.08.06 |
---|---|
인생에서 8가지 일에만 집중하라 - 양창정, 왕샤오단 지음, 하은지 옮김 / 내 인생의 중요한 8가지 (0) | 2023.07.30 |
심플라이프 - 제시카 로즈 윌리엄스 지음, 윤효원 옮김 / 관계에도 무소유가 필요하다. (0) | 2023.07.22 |
심리학이 관우에게 말하다 - 천위안 지음, 유연지 옮김 / 겸손하다는 것은, (0) | 2023.07.17 |
상식을 뒤엎는 돈의 심리학 –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돈은 인간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0) | 2023.07.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