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보게 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편에 이런 영상이 나온다. 등번호 001번 노인이 게임의 우승자인 456번 남자에게 죽음직전 마지막 내기를 제안하는 장면인데, 누군가 자정까지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행인을 구하지 않는다면 노인이 이기는 것이고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면 456번이 이기는 설정이다.
드라마 전편을 모두 보고 바로 책 한 권을 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똘스또이의 작품으로 드라마의 메시지를 확장하고픈 욕심에 단숨에 읽어 내렸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시류에 민감하고 출세에 집착하지만, 지극히 일상적이며 평범한 항소법원 판사이다. 그는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업무를 수행할 때는 극도로 조심스럽고 관료적이며 아주 엄격하다. 훌륭한 귀족 가문의 여인과 결혼하여 열여섯 살이 된 큰딸과 김나지움에 다니는 막내아들을 두었다.
법조인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던 이반 일리치는 갑자기 느껴지는 왼쪽 복통에 치료를 받아보지만 계속되는 통증에 원인 모를 중병임을 직감하고 자신의 인생과 관계를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을 수 있음을 인식하곤 절망에 빠진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인정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가를 거듭 물으며 신과 운명을 저주한다.
그러나 억울함 때문에 되살아난 현실과 마음의 괴리감이 도구적 삶을 살아온 본인의 선택 때문임을 깨끗이 인정하며 마흔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삶의 외연과 너무나 멀어진 내적 심리 사이의 괴리를 그려내며, 지금까지 ‘품위(?)’를 위해 살아 온 나에게 ‘삶이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의 질문을 남겼다.
인정하긴 싫지만, 금융자본주의 지배하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도구적 삶이 나에게 남긴 것은 ‘자책’이라는 감정이다.
똘스또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에게 전하려는 교훈은 남아 있는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스스로 원치 않는 도구적 삶에서 탈출하여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을 살라는 명령이다.
고전 문학의 정수로 알려진 똘스또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고통의 감정 묘사에 감탄하며 작가가 고뇌하던 ‘삶’의 문제의식과 열정에 감동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겁먹지 말자. 시간을 내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우리의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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