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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으로 구성된 <퇴계의 사람공부>는 퇴계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고 이를 역자가 해설하는 형태를 띤다. 역자의 해설을 먼저 읽고 퇴계 선생님의 글을 나중 읽으니 좀 더 쉽게 글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역자 이광호 님은 대학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쳤고 <근사록집해>, <심경 주해 총람>, <성학십도>, <이자수어> 등을 번역하고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편역하여 출간하였다.
퇴계 선생님이 추구한 학문은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인 도(道)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도학(道學)’이었다. 도학은 올바른 삶의 길을 알고 실천하는 가운데 자기 삶의 완성을 지향한다. 자기완성을 위한 학문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성인(聖人)을 지향하기에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 즉 ‘성학(聖學)’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이 만년에 지어 선조에게 바친 <성학십도(聖學十圖)>는 그런 의미에서 퇴계 학문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은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라는 것일까? 삶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 퇴계 선생님의 대답은 명확하다. 천명을 부여받아 완수함으로써 우주 자연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생의 즐거움 역시 타고난 천명인 본성을 온전히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각 장에서 소개한 퇴계 선생님의 감동적인 글과 역자의 해설을 인용하여 책의 내용을 전달해 보고자 한다.
“듣자 하니, 젖을 먹일 여종 학덕이가 태어난 지 서너 달이 된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이는 그 여인의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근사록>에서는 이러한 일을 두고 말하기를 ‘남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 자식을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고 했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이와 같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 <퇴계집>, 속집, 권7, 서(書)
퇴계의 증손자 창양이 엄마의 병환으로 젖이 없어 죽을 지경에 갓난아이가 있는 여종을 불러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물리게 하려는 손자에게 쓴 글.
“원하건대, 위대한 임금께서는 먼저 뜻을 세우시고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순처럼 된다’고 생각하시고 분발하여 배움과 생각이라는 두 가지 공부에 힘쓰십시오. 그런데 경(敬)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과 배움에 다 필요하고 움직일 때나 고요히 머물 때나 경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음 안과 마음 밖을 합치시키고 드러난 것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방법은 반드시 몸가짐을 삼가고 엄숙하고 고요하고 하나에 집중하는 때에 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변별할 때 이 진리를 궁구해야 합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곳에 있을 때에도 더 엄히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공경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은미하고 그윽하여 홀로만 아는 마음의 작은 기미에 대하여 더 정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 <퇴계집>, 권7, 차(箚)
퇴계가 68세이던 1568년(선조 1년) 12월에 올린 <성학십도>에 서문에 해당하는 글의 일부이다. 퇴계는 최고 지도자인 왕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알렸다. 왕은 공적인 존재로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성리학이라는 방대한 체계에 대해 혹여 어려움을 느낄까 열 개의 그림과 설명으로 요점을 추려서 제시하였다.
“순임금이 친히 질그릇 구우며 즐겁고 편안했고
도연명 몸소 농사지으며 얼굴에 기쁨 넘쳤네
성인과 현인의 생각을 내 어찌 알겠는가만
흰머리 되어 돌아와 은거하여 보네”
<퇴계집>, 권3,시
정치에서 물러나 향촌에서 도산서당을 짓고 사는 퇴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편을 가르고 싸우는 정치판, 변하지 않는 임금을 보고 실망한 퇴계는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서당을 세워서 자신의 공부를 완성하고 인재를 길러 정치를 바꾸고 나아가 조선 사회를 바꾸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묻노라.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도가 밝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가 크게 밝아지면 크게 행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옛날에 공자께서 편집하고 찬술하여 육경(六經)이 완비되었고 여러 제자와 자사와 맹자의 무리가 서로 이어 전술하여 사서(四書)가 갖추어졌으니 도를 밝힐 공이 이보다 더 성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이후로 천여 년 동안 도가 행해졌다는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 <퇴계집>, 권41, 잡저(雜著)
책은 무수히 많고 독서가들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다. 하지만 수많은 책이 진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할까? 서술은 더 다양해지고 더 깊어졌는데 어떻게 우리의 이해는 더 떨어지는 것 같은가? 퇴계는 서적의 효용, 더 나아가 학문의 효용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퇴계의 오랜 성찰이 묻어나는 깊이 있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퇴계 선생님은 인간의 사람됨을 가장 중시하였다. 사람됨이란 하늘이 내린 천명, 즉 인간의 본성을 깨닫고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전제하에 퇴계 선생님께서 사셨던 그 시절을 상상해 본다. 학문의 목적을 출세에 둔 많은 선비들, 권력을 위해 분투하는 관료들, 이문에 눈을 뜬 장사꾼들,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재야 지식인들,, 조선시대나 2020년의 대한민국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는 퇴계 선생님의 가르침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유효한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
오늘 접한 한 권의 책을 통해 퇴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간됨이 무엇일지 잠시나마 정성을 다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다운 사람’, ‘본성을 회복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든 분들에게 퇴계 선생님의 응원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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