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직장이 평생의 일터가 되는 사회, 회사가 내 미래의 버팀목이 되는 평생직장, 들어가기만 하면 퇴직걱정이 없는 직장,
90년 외환위기 전에나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지금의 고용은 헤어짐이 서로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평생직장을 차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궁극적 이유까지 망각하고 있는 작금에 긱(gig)이라는 새로운 경제방식이 회자되고 있다.
긱(gig)이란 용어는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섭외해 짧은 시간에 공연에 투입한 데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하룻밤 계약으로 연주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후 1인 자영업자로 기업과 단기간 계약을 맺고 일한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책의 저자 새라 케슬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 스타트업인 <쿼츠>의 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일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긱(gig) 경제의 다양한 경험을 저술하고 있다.
책은 여러 명의 이야기를 통해 긱(gig)으로 대변되는 독립노동자의 다양한 면을 전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독립노동자들은 교대근무도, 상사도, 제약도 없다. 아침 일찍 노트북을 들고 와이파이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카페를 찾아 이동하여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그런 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할 수 있다. 프리랜서로 전업하고 소득은 직장을 다닌 때보다 늘어났다. 그뿐 아니라 낮에 헬스장에 다녀오고 점심시간에 친구를 만나고 휴가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긱(gig) 경제의 대표적 주자 우버는 차량을 구입하지도 직원을 고용하지도 않았으며 그 대신 2개의 앱(고객용, 기사용)을 만들었다. 고객이 차량을 요청하면 우버가 근처에 있는 기사에게 알림을 보냈고 기사가 자기 차에 고객을 태워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버는 결제를 처리하고 수수료를 챙겼다.
과거 직장에 매여 있을 때는 사내 정치에 휘둘리고 답답한 위계질서 때문에 의견 하나 개진하려 해도 수많은 사람을 거쳐야 했으며 승진을 하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회사 안에서 ‘영업’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긱(gig) 경제를 만난 후에는 프로젝트를 맡아서 잘 끝내기만 하면 등급이 올라간다. 플랫폼에서는 성공적으로 완수한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점수도 높아진다. 그리고 점수가 높아지면 플랫폼 알고리즘의 신뢰를 받아 더욱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다. 말하자면 종래의 직업과 달리 일만 잘하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승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긱(gig) 경제는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값싼 노동력의 장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스타트업들은 독립노동자를 호출해 푼돈을 주고 음식 배달, 식료품 쇼핑, 심지어는 주차까지 맡겼다. 혹자는 이런 시스템을 두고 “모든 것이 주문만 하면 대령되는 이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고립된 응석받이 왕족이 되거나 21세기형 하인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왕족 대우를 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이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속에서 고객을 유치하고 경쟁사를 꺾기 위해 서비스 가격을 인하했다. 서비스 가격을 인하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 자본의 투자와 인건비의 감축 덕분이다.
또한 긱(gig) 경제는 노동자의 삶의 지탱하고 있는 각종 보호정책과 시스템을 퇴보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지금까지 노동자의 공평한 처우와 관련된 규정은 모두 풀타임 일자리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자리가 해체되고 있다. 현재 2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다른 노동자와 동일한 법적 보호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집단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유로운 시간관리, 넉넉한 경제적 수입, 효율적인 업무처리 등 긱(gig) 경제의 좋은 면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대체 불가능한 능력’이 그것이다. 이를 준비한 자만이 긱(gig) 경제에서 살아남는 승자가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안전망까지 사라지는 무서운 현실이 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새로운 고용의 변화는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혹시라도 우리가 긱(gig)을 준비하는 독립노동자이라면 화려한 포장에 감춰진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고 또 다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보와 빈곤 - 헨리 조지, 이종인 옮김 / 토지는 모든 부의 원천이다 (2) | 2020.12.20 |
---|---|
퇴계의 사람 공부 -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인간의 본성을 온전히 알고 실천하는 것 (0) | 2020.12.13 |
요한, 씨돌, 용현 - SBS스페셜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지음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0) | 2020.11.29 |
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 정약용, 오세진편역 /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0) | 2020.11.22 |
게으르지만 콘텐츠로 돈은 잘 법니다 – 신태순 / 콘텐츠 해킹 (0) | 2020.1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