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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요한, 씨돌, 용현 - SBS스페셜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지음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by 박종인입니다.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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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씨돌, 용현
국내도서
저자 : SBS 스페셜 제작팀 ,이큰별,이승미
출판 : 가나출판사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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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어느 노래의 가사이다. 시간을 지내보니 사람이 꽃처럼 아름답게 살기가 녹녹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의 리뷰는 몇 년 전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던 한 남자의 삶을 소재로 한 책이다. ‘요한’, ‘씨돌’, ‘용현모두 그 남자의 이름이다. 세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

 

저자의 글을 요약, 인용하여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봉화치 마을이 자리 잡은 남산의 산지기를 자처한 씨돌은 남산의 산신령이었다. 저자는 봉화치를 사랑한 한 사내가 그곳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처음 봉화치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정체에 대해 소문이 무성했던 것처럼 그가 사라지고 난 지금도 씨돌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가 이미 사망했다거나 다른 산으로 옮겨 갔다거나 누군가에게 쫓겨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의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씨돌이 강원도를 떠나기 전 시민단체에 자신이 살던 집과 부동산을 기부하려 하였지만 씨돌의 집과 땅을 기증받는 것은 단체의 운영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고 씨돌의 선한 뜻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고사하였다. 씨돌은 자신이 언젠가 봉화치를 떠나야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없을 경우 그를 대신해 누군가 봉화치의 자연을 지켜주길 바랐던 것이다.

 

저자가 씨돌을 만난 것은 2012<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피디를 맡고 있었을 때이다. 씨돌은 자연인이지만 꼭 그것에만 매몰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혁명가 체 게바라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되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씨돌은 생명과 자연을 오롯이 존중하되 현실적 삶을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소박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씨돌을 취재하면서 과거 그의 삶을 들려다 보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영남대학교 앞 표구사집 막내아들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고 다짐한 요한(씨돌의 세례명). 이 사건은 천주교 성당의 도움을 받은 연관의 형 연복 씨와 요한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정연관 상병의 죽음은 국회에서 다뤄진 최초의 군 의문사 사건이 되었다.

 

20047, 저녁 뉴스와 신문에 정연관 상병의 이름이 등장한다. 군사독재 시기, 국가에 의해 자행된 범죄를 조사하고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설치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정연관 상병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1987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 후보에 투표했다는 이유로 정연관 상병이 구타당해 사망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무려 십칠 년 만에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씨돌에게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1995629일 당시 무려 오백 두 명의 사망자와 구백서른일곱 명의 부상자 그리고 여섯 명의 실종자를 낸 사상 최악의 인재, 삼풍백화점 붕괴가 있던 날이다. 이 때 구조 작업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었다. 이들은 모두 생명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도 요한(씨돌)의 흔적을 발견한다. 당시 구조인력도, 구조장비도 턱 없이 부족했던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조활동에 참여하였다.

 

요한(씨돌)은 민간구조대원으로 구조작업을 마무리하고 민간구조대가 해체되면서 다시 봉화치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오는 길인지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다시 봉화치의 자연인이 되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씨돌이 삼풍백화점에서 구조활동을 하고 돌아왔다고는 짐작 조차하지 못했다.

 

홀연히 강원도를 떠난 씨돌을 만나게 된 곳은 뜻밖에도 한 대학병원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두 발로 걸을 수도, 자유롭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왼손을 통해서이다.

 

약자를 돕는 일을 사명으로 아는 사람, 그는 용현이라는 본명을 숨기고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갖고 거리로 나섰다. 이후 원주교구의 한 신부님과 함께 생활을 하며 노신부의 일을 거들던 요한은 신부님께서 새로운 부임지로 가시면서 강원도 정선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것이 요한씨돌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산속에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한 건,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등산객이었다. 빨리 신고가 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뇌출혈의 후유증은 그의 삶을 180도로 바꿔놓았다. 봉화치 꼭대기를 한달음에 오르내리던 그의 오른쪽 다리는 이제 더는 힘을 쓰지 못한다. 깊은 밤마다 글을 써 내려가던 그의 오른손도 돌처럼 움직이기 않는다. 입안의 근육 운동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침을 삼키거나 음식물을 씹어서 넘기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말을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천주교인이었던 자연인 씨돌이 인근 사찰 스님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음력 715일이 되면 백중이라고 하여 망자들의 패를 모시는 제를 올리는데 백중에 제를 올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매년 그를 위한 제를 지내 달라고 요청하였단다. 씨돌이 스님에게 적어준 고인의 이름은 박종철이었다. 요한은 봉화치의 괴짜 자연인이 되어서도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요한, 씨돌, 용현으로 살아오는 동안 민주화 운동하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사람도 구하고 정선에서는 자연도 지키고,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작 선생님께 도움되거나 관계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왜 그런 희생적인 삶을 사셨어요?”

 

저자의 질문에 용현의 왼손이 주저 없이 움직였다. 노트 위에 거침없이 적어 내려간 말은 당시 인터뷰 현장에 있던 전 스텝을 당황하게 했다. 그들은 머리를 한 대 맞기라도 한 듯,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몇 장의 A4지에 감동을 전할 길이 없다.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걸까? 아님 모르고 살았던 걸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자존의 기본임을 깨닫는다.

오늘부터라도 나대지 말고 담담하게 인간의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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