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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by 박종인입니다.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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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누군가 읽을 것이라는 기대로 생각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면 읽는 이를 위한 배려가 담겨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쉬울 것이다. 반면에 나만의 기억 저장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억의 왜곡, 각색된 감정 표현, 과도한 형식화 등의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도 무방할 것이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로는 글을 쓰지 않겠다.’ 소설의 저자 아니 에르노의 다짐이다. 소설에 허구를 들여오는 것이 무슨 허물일까마는 글의 재료로 자신의 생산물을 사용하여 기성품이 가지는 감칠맛 대신 투박한 본연의 맛을 내려는 결기가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럽다.

 

소설 <단순한 열정>은 유부남을 사랑한 한 여인의 감정 흐름을 기록하였다. 책을 펼 때만 해도 반윤리적 질서를 원초적 본능으로 극복하려는 통속적 설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후기와 평론을 보면서 다른 시각으로 글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책은 여느 연애소설처럼 극렬하지 않아 독자의 열정을 끌어올리지 못하였고 아련함의 결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설의 등장인물이 극화된 허구가 아닌 (현실을 함께 하는 인간,) 저자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란 소리에 생각을 멈추었다. 감칠맛으로 길들어진 나의 뇌를 잠시 쉬게 하고, 작가가 되어 내 경험으로 글의 마무리를 지어보고 싶었다. 내 연애 경험의 담백함이 동질감으로 다가온다.

 

“내게는 형용사의 위치를 바꾸는 일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덧붙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61)

 

진짜 나를 글에 표현하려면, 완벽함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미사여구가 지켜줄 수 있는 가공된 인격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한다. 한없이 경박하여 그 부끄러움은 모두 나의 것이 되도록 용기 내어야 한다.

 

노벨문학상이란 허울이 그녀를 과장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신념이 독자를 더욱 자극한다. 이런 작가들이 많아져서 경험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면 좋겠다. 집단적 억압으로 짓눌린 인간 본연의 생김새가 더욱 자유롭게 그려졌으면 좋겠다.

 

늦가을의 저녁,

한 편의 소설과 함께,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그()를 만나는 가슴 떨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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