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흩어진 글감을 모아 보지만 마음속 감정의 충돌로 오랜 시간을 빈 화면과 씨름하고 있다.
며칠 전 어느 당 국회의원의 발언을 접하고, 들고 있던 밥숟가락을 던질뻔했다.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역류하는 위산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위인의 망언을 두둔하는 특정 언론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가지고 배운 자들이 답습하였던 식민 사관은 해묵은 무좀균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에 번식하고 있다. 가진 자들은 부의 원천이 가지지 못한 자로부터임을 인정하지 못하며 배운 자들은 그 깊이가 미천하여 현상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우리의 선조는 목숨을 바쳤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의 선배들은 치욕적인 두려움을 참아내었다.
1909년 10월 26일, 청년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하였다. 당시 상황을 추측해 보건데, 조국의 독립을 상상할 수 없던 환경에서 일본의 통치는 지금의 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견뎌야 할 시련으로 여기며 식민지 국민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당시 많은 이들이 청년 안중근의 거사를 젊은 부랑자의 혈기 어린 만행으로 여겼다 한다. 임금이 그랬고, 언론이 그랬고, 지도자가 그랬고, 종교가 그랬다. 안중근은 체포된 후 첫 신문(訊問)에서 자신의 직업을 포수라 했고 기소 후에는 무직이라 말했다.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식민지의 청년이 위대한 통치국의 지도자를 살해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청년 안중근은 이토를 살해할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의도대로 이토는 사망하였다. 이토가 아시아에 이바지한 역사적 공과는 단순히 평가할 수 없지만 이토는 분명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수괴였다. 청년 안중근은 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공격한 것이기 전에 약소국(민)의 권리와 생명을 침탈한 적국의 군인을 처단한 정당 방위였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정치적인 이유로 유린당할 수 있는 것일까, 약육강식에 맡겨진 우리의 삶을 무엇으로 지켜낼 것인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패배주의에 휩싸여 스스로를 폄훼하는 자들이 있다. 이 식자(識者)들은 싸울 용기를 버리고 강자가 던져주는 ‘약자의 평안함’을 누리면서 (그들의 사냥개로) 살아간다. 이런 위인이 지도자가 되는 사회에선 길듦을 당연한 마음가짐으로 여기며 강자의 보호를 갈구한다. 마치 주인이 달아준 완장 때문에 자신이 노예임을 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망국의 청년이 가졌던 고뇌, 용기, 그리고 희생 위에 우리는 서 있다.
남겨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이 인류의 기본권임을 기억하고 강자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옹성처럼 쌓아 올린 패자의 벽을 부셔야 한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강하고 약자를 배려할 여유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여전히 위정자들의 행태를 보면 소화가 안 된다. 말 같지 않은 소리임을 알면서도 너그러울 수 없다. 그들의 뻔뻔한 입냄새가 구역질 나지만 그럼에도 역사는 전진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몰입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안중근이라는 큰 인물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에 역사를 담은 작가의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
(김훈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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