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자신이 세운 원칙에 스스로 가두는 우(愚)를 범한다. 그것이 마치 자연법칙처럼 권위로운 기준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원칙은 때론 자신을 구속하여 벗어나기 힘든 족쇄가 된다. 내로남불은 아마도 이런 결과로 탄생한 자조적 표현일 것이다.
책에 소개된 조조의 <보리밭 일화>는 원칙의 유연성을 생각하기에 좋은 예가 된다.
조조가 출정하였을 때는 보리밭이 한창 수확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뿔뿔이 흩어져 산으로 숨어버렸다. 조조는 사람을 풀어 숨어 있는 농부들과 관청을 지키는 관리들을 데려와 말했다.
“나는 천자의 밝은 조서를 받들고 역적을 물리치기 위해 왔으니, 이는 백성을 위한 것이다. 보리가 무르익은 계절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일으켰으나 장졸들이 보리밭을 밟는다면 지위에 상관없이 목을 벨 것이다. 백성들을 약탈하는 자 또한 엄벌에 처할 것이다. 군령이 이토록 엄하니 모두들 겁먹지 마라”
조조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이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엄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비둘기에 놀란 조조의 말이 보리밭에 뛰어들어 보리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규칙을 지켰는데 명령을 내린 본인이 규칙을 어기게 된 것이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지만, 법규를 제정한 자가 위법을 저지른다면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조조는 군법을 담당하는 행군주부를 불러 자신의 죄를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그러나 행군주부는 조조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러자 조조는 “내가 내린 명령을 내가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군사들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며 검을 뽑아 자결하려 하였다. 물론 연극이었지만 진짜 자신의 목을 벨 것처럼 매우 진지했다.
이때, 조조의 수하 곽가가 나섰다. “<춘추>에 ‘법도 존귀한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승상께서는 대군을 이끄시는 존귀한 몸이신데 어찌 자신을 죽이려 하십니까?’”
조조는 순간 묘안을 생각해 냈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었다. 당시는 부모가 물려준 것은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기본이었으므로 머리카락을 베는 행위는 마치 목을 자르는 거처럼 엄한 처벌이었다. 덕분에 군대의 사기가 떨어질 상황에서 군령의 지엄함을 지키는 좋은 예가 되었다.
“스스로 정한 한계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잃는다.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한계에 갇힌다면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 자기 한계 너머를 수용하고 한계 너머로 도전하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책 177쪽)
시행착오를 통해서 정해진 규칙은 의사결정의 방향을 제시한다. 반면 그 규칙에 갇혀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스스로 놓은 덫에 상처받게 된다. 규칙을 만드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다만 그 규칙은 지금까지의 경험만을 반영할 뿐, 날마다 발생하는 새로운 사건에는 다른 방법이 필요할 수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에 적용할 완벽한 규칙은 없다. 그래서 유연함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빈틈,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 숙일 수 있는 용기는 근본적 여유로움에서 탄생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기에,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대적 규칙을 만들어 보자. 미래의 어느 날, 그 여유로움이 위기에 처한 나를 지켜줄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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