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을 등지고 흐르는 옅은 흑적색 빛이 활자에 퍼질 때 기분이 좋아진다. 눈을 감고 생각의 꼬리를 물기에 이보다 좋은 순간은 없다.
한 편의 에피소드를 읽고 나면 지그시 눈을 감고 (마치 단편 영화의 감독처럼) 등장인물을 그렸다. 그리고 주인공이 되어 상황을 전개해 나갔다.
나와 닮은 사람,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살아본 소희의 결혼 생활,
뒤통수를 친 회사 동료와 다시 한 팀이 될 수밖에 없었던 A,
1등이 아니어도 즐길 수만 있다면 피아노 정도는 배워도 되잖아?
추운 날씨에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를 두고 온 사연,
정갈한 차림의 신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연하 남편과 연상 아내를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
10여 년 만에 만난 옛사랑,
웃음으로 이별을 맞이하는 명휘
손님 몰래 햄과 후라이를 더 넣어준 토스트 가게 사장님,
이들 중에 마음을 차분하게 했던 하나를 인용한다.
“늦은 저녁,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은수는 우산을 받쳐 들고 집에 가고 있었다. 그런데 구급차 한 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면서 인도 옆 물웅덩이를 밟았고, 그 바람에 은수는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은수는 아무리 구급차라도 저렇게 빨리 달리면 안 되지 않나, 생각하며 한바탕 성질을 내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간, 바람같이 달려간 구급차가 멈춰 선 곳은 다름 아닌 은수의 집 앞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려졌던 것이다. 구급차 기사가 속도위반도 신경 쓰지 않고 바람처럼 달려간 이유는 오직 은수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책 202쪽)
고통의 방어기제는 사슬을 만들었고 우리의 마음을 옥죄고 있다. 세상에는 더이상 신뢰는 존재하지 않으며 의심만이 남았다. 자신의 정의로움을 돌아보기 전에 타인의 작은 잘못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는 따스한 온기가 흐른다. 다만, 세상이 강퍅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곳을 향한 나의 눈초리가 의심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잘 다듬어진 싸리 빗자루로 비뚤어진 마음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낸 듯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비밀,
세상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
강퍅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몸과 마음이 ‘정갈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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