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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탕자, 돌아오다 - 앙드레 지드 / 너는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

by 박종인입니다.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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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성립되고 가치관이 서면 인간은 기존의 가치를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를 열망한다. 그것이 과거의 것과 같을지라도 자신의 선택임을 인지함으로 자립의 욕구에 부응한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생존하기 버거운 환경에 이르거나 자괴감에 빠질 경우, 주류의 행태에 순응하여 소외된 감정에서 벗어나고픈 본능이 발동한다.

 

그래서 나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벌거벗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고 더는 물러날 수 없는 끝단에 도달해서야 강퍅해진 마음과 한없이 나약해진 몰골을 바라보며 실패를 인정하게 된다. 부모의 간섭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려던 한 청년도 춥고 배고픈 현실에 부딪혀서야 자신이 탕자임을 알게 된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결단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이 수반 돼야 하는 복합적 행위이다. 반드시 올바른 것을 찾아 다시 접속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오늘의 주인공 탕자처럼 부모·형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탕자는 그런 사람이었고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아들이 아닌 당신 집의 하인으로라도 받아 달라 간청할 수 있는 용자(勇者)였다.

 

아마도 뉘우침, 가치관의 변화, 종교적 회개, 이념의 전향 등은 탕자의 귀환과 같아서 자신의 알몸을 보며 심연에서 느꼈을 절망감과 이를 탈출하려는 용기가 공존한 행동이라 생각된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 탕자의 부모는 얼마나 기뻤을까?

가장 튼실한 소를 잡고, 가장 귀한 옷을 준비하며, 마을의 모든 사람을 초대하여 아들의 귀환을 동네에 알리며 이웃들도 우리 아들을 구설에 담지 말고 귀하게 대접해 달라는 뇌물성(?) 잔치를 준비하며 축복을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며 묵묵히 고향을 지켰던 형은 아버지와는 다른 입장이었다. 고생은 내가 다했는데 나에겐 변변한 생일잔치 한 번 안 해주던 아버지가 저 잘랐다고 집 떠났던 동생에게는 이런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이 못마땅했다.

 

형의 눈에 비친 동생은 이기적인 욕심쟁이이다. 아버지 역시 형인 본인에게 한 마디 의논 없이 동생에게 너무나 과분한 처분을 내리셨다. 형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불공정한 권력자였을지 모른다. 탕자가 납작 엎드려 형의 눈치를 살피지만 형의 화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는다. 탕자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 집의 하인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왠지 형이 서운하다. 벌써 탕자는 부잣집의 둘째 아들로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또 다른 형제, 막냇동생은 큰형과는 다른 불평이 토로한다. 막내에게 둘째 형은 그가 집을 떠나기 전부터 자신의 우상이었다. 해박한 지식과 다정한 성격, 그리고 결단력 있는 행동은 자신이 존경하며 따르고 싶었던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랑스러운 형의 지금 모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막내는 형과 대화 중 무엇인가 결심한 듯, 탕자에게 자신도 형처럼 집을 떠나 제 뜻을 펴보겠으니 함께 하자고 부탁한다. 탕자는 말릴 수가 없었다. 동생의 말을 듣고 탕자의 마음에 다시 파문이 인다. 잠시 뒤 탕자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냐, 너 혼자 가렴. 나는 남아서 어머니를 위로해드려야지. 너도 내가 없어야 더 용감해지지 않겠니? 이제 떠날 시간이구나. 날이 밝아오고 있어. 조용히 떠나라. , 그럼 내 동생 한번 안아볼까? 너는 내가 품었던 희망들을 다 갖고 떠나는 거야. 강해지거라. 가족도 잊고, 나도 잊어. 너는 다시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이런 존재이다. 실패와 한계를 인정하고 (살려만 주신다면) 전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에고(Ego)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알몸을 보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던 그때로부터 알몸을 감출 옷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이며 선악과(Wisdom tree)를 탐한 인류가 짊어질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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