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백년 전쟁을 치르듯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압승의 전략 없이 화려한 전술만 난무한 전장에서 잠시 고지를 탈환하지만, 다시 내어주고 마는 신세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다시 러셀의 행복론을 찾게 된 건, 권위 있는 지성인의 의견을 듣기 위함이다. 나름의 기준보다 권위에 의지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그의 글을 대하고 싶다.
러셀은 정복(Conques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글의 전체적 분위기를 전달하였다. 마치 전쟁으로 불행의 땅을 정복하고 해피랜드로 만드는 과정이랄까? 책은 주제에 맞게 불행의 원인을 파악하는 1장과 행복의 조건을 제시하는 2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에서 제시한 내용을 꼭지로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청교도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경주는 의지만을 과도하게 발전시키고 감성과 지성을 쇠약하게 만들었으며, 경쟁의 철학을 자신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철학으로 택했다.” (책 60쪽)
제1장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에서 불행의 원인을
1)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
2) 불행을 우월감으로 즐기려는 태도,
3) 모든 가치를 흡수하는 경쟁의 철학,
4) 여유(권태)롭지 못한 분주한 삶,
5) 정신적 두려움(걱정)이 만들어낸 피로감,
6) 질투와 증오,
7) 이성을 마비시키는 지나친 죄의식,
8) 병적인 피해망상,
9) 대중에게 외면당한다는 쓸데없는 소심함을 들고 있다.
“어떤 열정이 불행의 원천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코 도를 넘어서는 안 될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전체적으로 유지하는 것, 생계유지에 충분한 소득을 유지하는 것, 처자식에 대한 의무와 같은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책 181~182쪽)
제2장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는 행복의 조건으로
1) 폭넓은 관심,
2) 절제된 열정,
3) 주고받는 사랑,
4)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태도,
5)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일거리,
6) 적절한 체념,
7) 스스로 행복한 존재임을 자각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올바른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때 생긴다.” (책 192쪽)
작금의 불행을 개인의 이기심으로 몰아가기에 앞서 기회의 불균등이 가져온 경쟁의 상처로 여겨지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평등한 출발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 그리고 차별화된 기회와 피나는 노력만으로 고지를 탈환해야 한다는 압박이 만들어낸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를 지켜야 하는 것은 행복 역시 불행이 가져다준 ‘부족함을 채움으로써’ 출발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세상이야말로 나의 생존을 지탱하는 토대이며, 나에게 행복한 생활을 가져다주는 기회이므로, 외부세계에 대해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찾으라”라고 말한다.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책 249쪽)
행복은 이처럼 탈환해야 하는 정복의 대상이다.
이 책의 서문에는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독자들에게 내놓은 비결은 직접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들이며, 이 비결대로 행동할 때마다 나는 더욱 행복해졌다. 이 책의 비결을 통해 불행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거기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라는 러셀의 바람이 담겨 있다.
삶의 궁극적 목표가 행복을 향하고 있다면 많은 관심사를 만들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복을 위해선 때론 권태로움을 즐겨야 하며, 치열하게 불행의 벽을 깨부수어야 한다.
90여 년이 지난 그의 글이 여전히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행복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권위를 배제하더라도 백전노장이 전장에서 체득한 메시지기를 쉬운 언어로 표현한 배려에 다시 한번 감동한다. 그가 던지는 일침은 행복을 찾는 우리에게 귀한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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