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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젊은 날의 초상~!!

by 박종인입니다.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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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주인공 ‘나’가 방학을 맞이하여 잠시 내려온 고향에서 친구인 ‘쥐’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와 겪게 되는 18일간의 이야기이다.

‘나’는 스물한 살의 대학생으로 1970년에 맞이한 여름 방학을 고향에 돌아와 보내고 있다. 이곳에는 친구이자 대학을 중퇴하고 소설을 쓰고 있는 ‘쥐’가 있다. ‘쥐’의 아버지는 전쟁 전부터 시작한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장사로 지금의 부자가 되었지만 ‘쥐’는 그렇게 모은 부를 혐오한다. ‘쥐’는 자신의 글에 사람이 죽는 장면과 정사 장면을 절대 묘사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는 고향에 돌아와 방학 기간을 바(bar)에서 맥주와 함께 보냈다. 어느 날 바 화장실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하룻밤을 함께 한다. 둘은 더욱 가까워졌고 방학 기간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간 ‘나’가 그해 겨울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다니던 레코드 가게를 그만두고 항구 도시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 소설의 끝은 소설 첫 장에 소개된 가상의 작가, 하트필드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저자 하루키는 소설 속 ‘나’와 ‘쥐’를 통해 본인의 양면성을 묘사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대학생인 ‘나’와 부자이지만 대학을 중퇴하고 소설을 쓰고 있는 ‘쥐’, 본인의 내심을 감추려는 ‘나’와 내면의 자아를 들어내려는 ‘쥐’를 통해 하루키 자신이 소설가로서 첫 무대에 선 진솔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나의 스물한 살을 회상해 보았다.

나의 스물한 살은 막연한 미래의 희망과 처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의 두려움, 그 둘의 반복이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나이임에도 모든 것을 아는 척 자만했으며, 잃을 만큼 가진 것이 없었음에도 상실감을 논하곤 하였다. 상실감은 본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가 잃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기에 사실 그때의 정확한 감정은 (공식적으로) 책임이 따르는 선택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또한 생존의 필요를 해결해준 부모가 계셨기에 여유로울 수 있었고 영원히 부모의 자식으로 살 수 있단 착각에 맘껏 청춘의 객기를 부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앎과 모름의 경계, 가짐과 모자람의 경계, 외향적 성격과 내성적 성격의 경계, 매력과 찌질함의 경계, 사랑과 우정의 경계, 신본과 인본의 경계 등 셀 수 없이 많은 경계의 선에서는 방황했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스물한 살은 억눌렸던 연애 본능이 꽃을 피운 시점으로, 운명처럼 호감 가는 이성을 만나 단짝이 되면 삶은 그저 울렁울렁한 감정과 웃음이 떠나지 않는 승리자의 하루였고, 반면 선택받지 못한 아쉬움과 단짝에게 버려진 더러운 감정에 잠 못 이룬 나날이기도 했다.

독후감을 쓴 이후로,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버릇이 올곧이 소설과 하나 됨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줄거리를 요약하고 이를 정리하려는 행동은 소설과 가까워질 수 없는 작은 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권을 소설을 읽고 나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설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도 소설의 두 인물에게서 이십 대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이며, 큰 즐거움이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분이 나름의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 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십 대 끝자락에 쓴 입문작이자 첫 소설이라고 하니, 젊은 하루키를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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