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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 채사장 / 현실너머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속에서 발견하는 보편적 인식의 흐름

by 박종인입니다.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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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에 이어 그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로 대변되는 인간 내면 인식에 대한 흐름을 다룬다. 진리라고 불리는 인식의 합의를 위해 인류는 계속해서 경주하고 있다.

 

진리는 절대성, 보편성, 불변성이라는 속성을 가진다. 또한 이에 부합하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절대주의)하거나 그렇지 않다는 주장(상대주의), 그 내용을 알 수 없거나(불가지론) 혹은 쓸모없는 진리는 의미 없다는 주장(실용주의) 등이 혼재하며 원시의 자연신, 고대의 신화, 중세의 유일신, 근대의 이성으로 흐름이 이어졌다.

 

이러한 기본 틀에서 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절대주의의 전통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중세의 교부철학과 실재론을 거쳐 근대 합리론으로 이어졌다. 반면 상대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해 중세의 스콜라 철학과 유명론을 거쳐 근대 경험론에 이른다.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인물은 칸트이고 헤겔과 마르크스가 뒤를 이어갔다. 현대에 이르러 하이데거가 존재를,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탐구하며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담론을 이어갔다. 회의주의는 소피스트를 시작으로 쇼펜하우어, 니체, 실존주의로 이어지면서 포스트모던의 사상적 기반을 이룬다.

 

과학 역시 진리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인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시작으로 근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갈릴레이부터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근대 과학은 절대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반면 현대에 등장한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가 수학적 필연이 아닌 개연적 확률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불확정적인 세계관을 제시했다. 이런 측면에서 양자역학은 근대 과학에 비해 상대주의적인 측면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철학 분야에서 제시된 회의주의는 쿤의 패러다임 분석을 통해 과학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이 아닌 정치적인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변화되어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과학적 확실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경계해야 함을 주장하게 되었다.

 

미술사 역시 큰 흐름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보편적 이성을 중시한 절대주의 예술관, 이와 대비되는 주관적 감성을 중시하는 상대주의 예술관, 마지막으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회의주의 예술관이 그것이다.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던 절대주의적 입장은 고대 그리스·로마를 시작으로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을 지나 르네상스 미술로 이어졌다. 르네상스시기에 등장한 바로크, 로코코 미술은 이성적인 르네상스 미술에 반기를 들고 유연하고 화려한 미술을 추구했다. 이러한 감성 중심의 미술은 이후 낭만주의로 이어지고 근대에 이르면 낭만주의의 비현실성에 반기를 든 사실주의 미술이 탄생하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무거움과 역사성에서 벗어나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려는 인상주의가 등장한다. 현대에 이르면 예전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들을 실험하는 회의주의적 창조 미술이 등장한다.

 

최첨단을 살고 있는 지금에도 종교는 여전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종교는 크게 절대적 유일신교와 상대적 다신교로 구분되는데 구약성서를 근간으로 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여기에 속한다. 이와 달리 상대적 다신교로는 베다를 근간으로 하는 힌두교와 힌두교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가르침을 비판하고 현실적 고통을 제거하는데 집중한 불교가 있다. 오늘날 회의주의적 종교는 존재하지 않으나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지닌 철학과 과학의 영역이 발견되곤 한다.

 

이제 책의 마지막 챕터인 <신비>에 도착하였다. 타인의 의한 관측은 불가능하지만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하게 나에게 인식되는 것, 이것들이 신비의 대상이다. 특히 죽음과 죽음 이후의 무(無), 영생, 윤회, 영원회귀(동일 반복) 등에 대한 신념과 그 해석은 의식적 존재인 인간 개개인이 결정해야 할 부분으로 삶의 신비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너머 인식의 세계를 각 분야별로 구분하여 보편적인 인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정-반-합’이라는 절차를 통해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절대주의는 이내 상대주의를 만나 투쟁과 합의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인식을 만들면서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

 

드디어 <지대넓얕>시리즈를 마무리한다. 마라톤을 무사히 마친 느낌이다. 다음은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내 느낌에 충실해 보려 한다. 거친 지식의 알곡들을 콕콕 빻아서 독자의 소화력(?)까지 신경 써주신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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