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는 ‘앎의 욕구’란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뿌리지 못하는 것은 그 열매의 경제적 쓸모가 없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읽고 쓰는 것이 건강한 육체와 깨달음을 향한 훈련 방법일 뿐만 아니라 밥벌이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저자 고미숙 작가는 고전평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열하일기, 동의보감, 서유기 등 고전 관련 서적을 집필하였으며 지식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이다.
‘산다는 것’은 ‘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선다는 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두발로 자립(自立)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선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대로 서있으려면 자연의 이치와 천성을 알아야 한다. 갓난아기처럼 호흡하는 것,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그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도(道)다. 그 도를 터득하려면 알아야 한다. 길흉을 알고 멈춰야 할 때를 알고 자연의 속도와 리듬을 알아야 한다. ‘그 앎’이 바로 생명의 원동력이다.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천문과 땅의 지리를 통해 자연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방향을 찾는 것이다. 이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가 바로 ‘앎’이다.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의 본질이다. 이렇게 얻어진 고귀한 정보는 말에서 문자로 진화하여 나무라는 지식의 전령사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단순히 구경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무엇인가 쓰는 노력은 생성과 창조에 참여하려는 최고의 과정이다.
책에는 삶의 방향을 제시할 지도가 있다. 그러나 그 책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이 구별됨으로써 제국이 탄생하였고 계급이 분화되었다. 모든 혁명의 성과에는 ‘책의 해방’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현대는 책이라는 물리적 형식이 매우 다양화 되고 과거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의식의 비만이라는 질병을 남기게 되었다. 무엇인가 이루고자하는 욕망이 많아지면서 자신 내면의 세계에 집중하기 보다는 성공과 경쟁의 차원에서, 소유와 집착의 차원에서, 지엽말단에 빠진 것이다. 증식되는 것들에는 즐거움은 없다. 쾌락과 자극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즐거움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읽기가 타자(他者)의 언어와 접속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그 접속에서 창조적 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접속과 변용의 반복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남이 걷는 길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내가 걷는 단 한 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인류는 생식을 통해 생명을 창조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진화하여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부터 시작하여야 할까?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청년에게도 좋고 노년에게도 좋은, 그런 활동, 바로 글쓰기이다. 물론 처음부터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건 무엇이건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갈고 닦는다면 읽고 쓰는 행위는 새로운 산업의 부를 이루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천체물리학에 엄청난 돈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 앎의 열망에는 조건도, 경계도 없다.
새로운 문명의 비전은 소유와 축적의 욕구를 내려놓고 공유와 증여의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읽고 써야 한다. 특히 동서양의 현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고전을 탐독하여야 한다. 어느 시대, 어느 저자를 탐구하더라도 현자들의 사상적 그물망 안에 걸리게 된다. 그 어떤 앎의 여정도 ‘축의 시대’ 현자들로 이어진다. 그들이 설파한 자비와 공감이라는 메시지와 필연코 마주치게 된다. 그 지혜의 파동에 접속하는 것이 곧 읽기와 쓰기이다.
구경꾼이 아닌 창조적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 읽고 쓰는 것이 밥벌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의 활동에 새로운 동력이 된다. 무엇보다도 글쓴이의 지혜가 담긴 글을 읽고 새로운 창조물을 생산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나는 일인가?
오늘 만난 저자의 글은,
글 쓰는 방법 보다는 글을 써야하는 근본적 이유를 제시해 주는 책이다.
책은 1부 <글쓰기 존재론>과 2부 칼럼, 리뷰, 에세이, 여행기 쓰는 <실전비결>로 구성되었다.
실전의 관심분야를 먼저 읽어보고 글쓰기의 존재론을 보는 것도 급한 마음을 달래는 좋은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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