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책 한권을 책장에서 꺼내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젊은 시절이 이 책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20여년전 나 역시 낙원구 행복동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은 넓은 공원이 자리 잡고, 옛 모습을 잊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도심안, 재개발을 기다리던 철거촌이었다.
1960~70년대 당시 서울은,
유입된 많은 사람들에 비해 주택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고, 무허가로 지어진 많은 집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체계적인 도시개발이 필요했고 이주대책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내몰다 보니, 많은 가구가 그들의 생활 터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또한 헐값에 보상이 이루어지고 분양대금은 천정부지로 올랐으니 이 사이 투기꾼들은 파리처럼 몰려들고 가난한 터전민들만 희생자로 남게 되었다.
소설 속 영희네 식구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이야기는 영희 (난쟁이)아버지가 철고 계고장을 받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영희 아버지는 변변한 일을 찾을 수 없어 서커스 보조일을 준비하다가 가족의 만류에 의해, 이내 보조일을 포기하고 병든 노인으로 방을 지키고 되고,
어머니는 제본 공장에서 접지일을 하고 있으나 벌이가 좋지 못하여 가계에 큰 도움이 못되고 더욱이 아버지를 대신한 가장 역할에 심신이 지쳐 있었다.
두 오빠는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의 공원으로 취업을 하였으나 가족의 생계는 여전히 힘든 상태였다.
이때 영희 가족의 유일한 희망인 새집 입주권을 부동산업자에게 팔게 되고
이 업자를 몰래 따라 나선 영희는 업자가 가지고 있던 영희네 매매계약서를 훔쳐 도망 오는데, 그 사이 집은 철거되었고 아버지의 부고와 식구들의 이사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영희의 소망을 이야기 하면서 글은 마무리 된다.
내일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오늘날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분배의 문제’가 있으니,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이 이야기가 단순 시대상의 반영이라고만 하기에는 역사는 너무나 반복된다.
1971년 (경기)광주대단지사건을 시작으로 2009년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서두에 인용 하였듯이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옥에 살면서 매일매일 천국을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영희 아버지가 쏘아올린 작은 희망이 “머리 위 하늘을 가르며 드높이 날아올라” 다시는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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