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신영복 선생님께서 동양고전인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을 강의한 내용으로 경제학자가 바라본 동양고전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 만했다.
방대한 고전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교양수업 이상의 깊이를 느낀다. 아마도 독(청)자를 배려한 쉬운 설명과 선생님이 숙고가 묻어난 해석 덕분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니 삶에서 가졌던 궁금함과 여전히 결단할 수 없는 가치 기준을 적지 않게 발견한다. 그중 3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책 101쪽, 주역의 관계론 중)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업무 능력이 모자라는 회사의 임원, 대의와 시대정신이 없는 정치인, 애민과 희생정신이 없는 종교인, 애국심이 부족한 군인 등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에게 매몰되어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위선과 과장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결국 본연의 모습이 들통나고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를 따르던 추종자는 먼지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그들의 끝은 보통의 경우 불행으로 귀결된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모자란 능력을 키워가며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도전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주역의 말씀은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응 동의하는 바이다.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책 179쪽, 논어 인간관계론 중)
이론과 실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덕목일까? 물론 이들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발생하는 서로의 괴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큰 문제다. 읽고 깨달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이는 관념적인 결과이며 현실에서 같은 결과로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기 경험만을 보편적 진리로 믿고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공부하지 않는 편협한 모습이 싫어진다.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은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책 182)
그래서 배우고 익히면 행해야 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만이 ‘보편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약한 사람이 그 수에 있어서 다수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강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지배하는 약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강자의 힘은 그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지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힘은 원래 약자의 것이지요.” (책 288쪽 노자의 도와 자연 중)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 결정에 기반한다. 다수의 의견이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부조화를 다시 정의롭게 만드는 것 역시 다수의 힘이다.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여 어느 곳에 서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옳고 그름을 말할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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