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돈다.’
세상의 어떤 것은 신념이란 프레임에 갇혀 후대에 답습된다. 그러나 의심 없이 받아드렸던 사실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 옛날 지동설을 깨달았을 때가 그랬고, 분류학상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금의 사실을 읽게 된 때가 그렇다.
잘못된 신념이라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대중의 선택을 받게 된다면 오류는 진리가 되고, 의심은 반역이 된다.
이러한 오류에,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비상식적이지만 공포스런 힘을 가진다. 사실의 판단 없이 답습된 지식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혹여 진실을 탐구하려는 시도조차도 그 벽의 높이에 부딪혀 차단되고 만다. 결국 응집된 힘은 약한 집단을 선택해 화력을 집중한다. 우생학(優生學)을 가져다 학살의 논리로 활용했던 어느 집단의 예는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가장 적합한 사례이다.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아버지는 쌍안경 뒤에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씩 웃는 얼굴로 내게 돌아서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의미는 없어!”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책 84쪽)
이러한 각성이었을까, 저자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었던 인생의 의미에, 혼돈이라 대답했던 것도 어쩌면 지금까지의 사실이 내일의 사실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한 과학자의 답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혼돈을 인생의 답으로 맞이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절대적인’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한다. ‘절대’가 가진 파괴력을 인식한 이상 진리라 믿고 따르는 것이 좀 더 유연해야 함을 알게 된다. 이것이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삶의 용기라 믿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지루함을 느꼈다. 교훈을 찾으려는 버릇 때문에 미리 읽은 사람의 독후감을 보고 그들의 시각을 빌려 다시 읽어 보았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이다. 예비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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