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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 - 제러미 리프킨 / 접속의 시대

by 박종인입니다. 2020.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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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생각해 보면 내 것이 된다는 게 길어야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이며, 물론 상속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 내가 느끼는 소유에 대한 감정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에, 운 좋으면 죽을 때까지 남들 눈치 안 보고 내 맘대로 쓰다 가는 호사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소유하는 것이나 장기적으로 빌려 쓰는 것이나 결과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오늘 소개할 책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 비평가로서 <노동의 종말>, <엔트로피>, <육식의 종말>, <공감의 시대> 등을 저술하였으며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행동주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책은 1,2부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별로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접속의 시대에는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물적 재산이 찬밥 대우를 받고 지적 재산이 부상하고 인간관계가 점점 상품화되면서, 재산의 교환이 경제의 일차 기능이었던 시대로부터 경험 자체가 완전한 상품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환경이 도래할 것이다.  

현실 공간에서 가상 공간으로, 산업 자본주의에서 문화 자본주의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조류 앞에서 사람들은 사회 계약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게 없는 경제

"사용하되 소유하지는 말라"

사실상 모든 종류의 생산 자본이 임대되고 있다. 이제는 소유하지 않고 리스 만기가 되면 새로운 설비로 교체하기 때문에 늘 첨단 설비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리스는 세계적 현상이 되었고 많은 기업이 그들의 고정 자산을 매각하고 남은 돈으로 유연하게 리스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의심스러우면 밖으로 돌려라"는 말처럼 네트워크 경제에서 아웃소싱은 거의 종교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다. 

 

 

지적 재산의 독점

신석기시대의 농업 혁명 이후 지금까지 농부들은 항상 자신의 종자를 소유해 오며, 수천 년 동안 수확을 한 다음 내년 농사를 위해 씨앗을 따로 모아 두었다. 씨앗은 가족과 이웃이 나누어 가졌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물건과 바꾸기도 하였다. 

농부와 씨앗의 이러한 근본적 관계가 깨지고 있다. 특허를 얻은 종자는 판매되지 않는다. 다만 한 해 농사를 지을 동안만 빌려주는 것이다. 수확을  해서 얻은 새 종자의 소유권은 특허권자에게 있기 때문에 농부가 이듬해 농사에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농부는 타인의 지적 재산에 잠시 접속할 수 있을 뿐이다. 종자는 법적인 의미에서는 판매되거나 구입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임대될 뿐이다.  

 

 

서비스 세상

"제품은 무료, 서비스는 유료"

점점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제품을 그냥 주고, 제품의 유지, 보수, 업그레이드에서 돈을 벌어 들인다. 세상만사가 서비스화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상품을 교환하는데 바탕을 둔 체제에서 경험 영역에 접속하는데 바탕을 둔 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급자는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는 고객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식견을 빌려준 뿐이다. 고객은 사실상 클라이언트, 파트너가 된다. 

 

 

인간관계의 상품화

고객은 사업의 기초이며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고객만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사회가 부를 낳는 자원을 기업에 위임한 것은 고객에게 그것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목표는 고객을 창출하는 데 있으므로 모든 기업은 오직 두 가지 기능, 즉 마케팅과 혁신에만 전념하면 된다. 새로운 세계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관심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상업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앞으로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접속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삶으로서의 접속

CIDs(common-interest developments, 공동 관심 단지)라는 주거 공동체가 미국 전역에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월트 디즈니가 계획한 공동체 <셀러브레이션>이 그것이다. 이는 개인 부지에 개인 주택을 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집 자체의 특성보다는 주민들이 누리게 될 경험을 선전하고 단순한 생활공간을 뛰어넘어 우아한 생활 양식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플레이스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CID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CID가 제공하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 때문이다. 이제는 소유의 자부심을 위해 부동산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의 접속권을 사는 시대이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소유해서 사용하느냐 아니면 접속해서 즐기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기업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력 산업의 성격이 바뀌는 과정에서 관광산업은 산업 생산과 문화 생산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에 걷잡을 수 없이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문화 생산은 21세기 고부가 가치 산업을 선도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 문화 생산은 경제 생활의 1열로 부상하고 정보와 서비스는 2열, 제조업은 3열, 농업은 4열로 내려 갈 것이다. 이 네 개의 열은 소유 관계에 바탕을 둔 체제를 접속에 바탕을 둔 체제로 꾸준히 탈바꿈시킬 것이다.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사유 재산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 건 물리적 자본을 소유하고 생산 수단을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반면 접속 관계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 건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소유하고 네트워크에 이르는 통행로를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지역 문화와 세계 문화에 대한 접속의 문제, 상업화된 형태로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둘러싼 쟁탈전이 점점 전면으로 부각된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문화 중개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접속이 체험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지기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탈근대

심리학자 로버트 리프턴이 이야기한 변화무쌍한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할 말을 모두 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정보에 즉각 접속하여 인출하는 데 익숙하고 하나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며 성찰적이기보다는 찰나적이다.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기자라고 생각하고 근면하다는 말보다는 창조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 더 뿌듯해진다. 임시직에 익숙하고 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편성된 조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부모 세대처럼 단단히 뿌리박은 삶보다는 아주 유연하고 순간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념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이고 글자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쪽이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남녀를 끌어당기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스타일과 패션이다. 이들의 세계는 점점 가상의 행사와 순간적인 경험으로 채워진다. 이들에게 접속은 생명이다. 접속이 끊긴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사유 재산 관계와 소유권이 거의 모든 경제 행위를 지배했던 근대와는 달리 탈근대에서 사람을 가르는 선은 소유가 아니라 접속인 것이다.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소유의 가치는 사용하고 수익하고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가지는데서 기원한다. 여전히 "소유"의 관념과 욕망을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은 소유함으로써 얻는 만족감보다 소유하지 못함으로 느끼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도래한 <접속의 시대>에 접속이 가지는 다양한 정의를 받아들이기까지 다소의 시간이 걸릴 듯하다. 특히 자본주의와의 화학적 결합을 인식하는데 꽤 많은 정성을 들여야겠다. 

 

저자의 주장에 좀 더 깊은 접근을 원하시는 분들은 특히 chapter 10의 탈근대를 집중해서 읽어보실 것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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