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디 악하다. 이런 전제를 달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 듯하다.
수 세기 전만 해도 인간이 권력을 얻는 방법은 폭력과 무자비한 힘이었다. 그런 체제에서는 언제나 선택된 소수만이 권력을 쟁취하였다. 아무런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현실에 순응하며 고통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지와 지략을 발휘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놀라운 권력의 기술은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해 볼 기회가 생겼다.
책의 저자,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은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 <유혹의 기술> 3부작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현실을 돌파하는 지혜를 전파한 권력술의 멘토이다. 그가 집필한 권력과 대중조작에 관한 책 <권력의 법칙>은 현대판 군주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책은 2Part로 구성되어 Part1.에서는 ‘관계를 주도하는 유형’을 설명하며 Part2.에서는 4개의 Chapter로 나누어 ‘관계를 주도하는 전략’을 싣고 있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관계를 주도하는 유형을 원초적인 욕망의 지배자 세이렌(Siren), 억눌린 욕구를 해방시키는 정열가 레이크(Rake), 마음속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구원자 아이디얼 러버(Ideal Lover), 추종자를 불러모으는 중성의 마력 댄디(Dandy), 향수를 자극하는 천진한 어린아이 내추럴(Natural), 무심함이라는 차가운 무기 코케트(Coquette), 기쁨과 편안함을 주는 무한한 긍정성 차머(Charmer), 본능적으로 타고난 강렬한 호소력 카리스마(Charismatic), 대중의 동경을 읽는 눈 스타(Star) 등, 9개의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의 특징과 그 기질을 발현하는 방법, 그리고 금지사항들을 설명한다.
관계를 주도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며 상대방의 심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상대를 귀찮게 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말이 많으면서도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는데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 아첨꾼, 도덕주의자, 구두쇠, 소심한 사람, 수다쟁이, 과민한 사람, 속물 등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관계에서 희생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변형된 레이크 혹은 세이렌, 좌절한 몽상가, 응석받이, 내숭쟁이, 좌절한 스타, 풋내기, 정복자, 색다른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 비극의 주인공, 교수, 미인, 철부지, 구원자, 방탕아, 우상숭배자, 감각주의자, 고독한 지도자, 양성애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행동이 유혹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대개 자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상대를 즐겁게 해주기 어렵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한다는 말을 유혹이라고 표현한다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불안심리를 달래주고 분산된 마음을 나에게로 집중시켜야 한다. 이를 4개의 단계로 나누어보면 첫 번째 단계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이다. 먼저 삶에 불만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유혹의 대상을 선정한다. 그리고 밀고 당기는 행위를 통해 너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고 사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여 접근하여야 한다. 이때 나의 태도를 연출하여야 하는데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듯하면서도 세속적으로, 순진하면서도 교활하게 상반된 태도로 유혹의 진의를 숨겨야 한다.
자, 이제는 상대방의 경쟁심을 유발시킬 차례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소유욕을 자극하려면 그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핵심은 경쟁 욕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최대 약점인 허영심과 자긍심에 호소하여야 한다. 자신의 삶에 만족한 사람을 유혹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낄 때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상대방 내면의 공허와 불안을 자극하여야 한다. 상대의 잃어버린 꿈과 젊음을 자극하라. 강한 자극은 때론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러니 상처를 준 다음이라면 부드럽게 달래주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즐거움과 혼돈을 교차시킴으로써 상대의 감정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서프라이즈를 좋아한다. 예측 불가의 행동으로 호기심을 끌어내야 한다. 상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한 걸음 앞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갑자기 방향을 바꿔 스릴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그들을 즐겁게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감정을 자극하는 말, 그들의 비위를 맞춰 그들의 불안감을 달랠 수 있는 달콤한 말, 유혹의 말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고상한 말은 뭔가 속셈이 있다고 보여 지며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이나 사려 깊은 선물 같은 사소한 표현들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제 나의 약점을 들어내 상대의 연민을 끌어낼 시점이다. 상대로 하여금 자기가 더 우월하고 강하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이렇듯 상대를 유쾌하게 해 주면서 다른 생각은 모두 몰아내야 한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상대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게 함으로써 더욱 깊은 유혹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혹에 선뜻 넘어오지 않는 이유는 유혹자의 동기나 진의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진의를 입증할 차례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 얼굴에 피를 흘리며 팔다리가 부러지는 희생을 보여 줄 기사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부모처럼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상대방과 함께 사회적 금기를 어길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죄책감을 공유하며 강력한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목적에 있다는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의 가장 강력한 전술은 상대에게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가 두려움에 빠져 고통 받고 있을 때, 무관심한 척 대하다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친절한 태도로 접근하여 가혹함과 친절함을 동시에 선사한다면 상대는 더 이상 유혹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육체적인 굴복을 얻어내는 방법이다. 유혹하되 유혹당하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상대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온 것을 감지하였다면 과감하게 돌진하여야 한다. 도덕적인 잣대는 필요 없다. 이제는 정치적이 아니라 유혹적이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면 안된다. 성공적인 유혹 뒤에는 위험이 따른다. 여타의 이유로 이별을 하여야 한다면 질질 끄는 작별은 삼가도록 하라. 신비감을 유지하며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라. 그리고 두 번째 유혹을 준비하라.
여러 감정이 동시에 든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다.
전쟁을 위해 병법서 있듯이, 유혹을 위해 전술서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저자의 책들이 현대판 <군주론>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원제는 <The Art of Seduction>, ‘유혹의 법칙’이다.
인간관계가 유혹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기분은 뭘까?
권력술의 멘토인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유혹 당하실 분이 계시다면 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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