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해서 사전을 펴고 퍼시스턴트(Persistent)란 단어를 찾아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영단어였다. ‘끊임없이 지속되는’이란 뜻이 있는 이 단어는 나의 20~30대의 인생 단어처럼 쓰였던 놈이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에서 멀어진 그런 애증 어린 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자랑거리로 삼기엔 빈약한 생각이 든다. 물론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에 남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타인의 삶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다.
책의 저자, 김영욱은 울산대학교 의대를 특차로 입학하여 미래가 보장된 삶을 살던 인물이다. 그러나 다니던 의대를 그만두고 공대로 진학, 해외 유학 생활을 거쳐 공학박사의 삶을 산다. 삼성전기와 씨젠에서 치열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지만, 대장암의 발견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병마와 싸우면서 자신만의 사업을 모색하게 되었고, 1억도 안되는 창업자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 조직을 갖춰야 할 위치에 서게 되니 조직의 도움을 받던 때와는 다르게 모든 행동과 결과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저자는 모든 창업가가 사업 초기에 겪는다는 죽음의 계곡에 서게 된다. 턱 없이 부족한 사업자금, 생각이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 미숙한 조직 운영 능력 등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허(미생물막 제거 관련)를 밑천으로 힘들게 이겨낸다. 이후 제조에서 영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회사 운영 활동을 직접 경험하며 사업가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지금은 연구 개발의 결과물인 시제품(미생물막 제거 칫솔)을 출시하여 상당한 매출을 자랑하는 회사의 대표로, 개발자로, 협상가로 살아가고 있다.
책은 3부 7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2부(‘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조차 할 수 없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행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실패할 자유’,
이런 어휘는 청년 시절 내 사전엔 없었다. 자연스럽게 두려움에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나 역시 여러 번의 사업을 시도했었지만 흥하지도 망하지도 못했던 것은 이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실패할 자유가 있다. 아마도 각자의 주변인들은 나와 당신이 죽지 않을 만큼의 실패를 경험하길 바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성실히 실패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투자임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었으니,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은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 생각되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이라도 내 몸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이 경험한 결과치로는 타인의 삶을 그릴 뿐이다. 내 경험과 훈련으로 타인의 교훈 위에 나만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이 된다. 그러기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처음의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는 때론 참기 힘든 시간일 수 있지만, 생명의 탄생처럼 산고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당연한 이치임을 인지하였으면 좋겠다. 이렇듯 과정과 결과에 올곧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야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저녁에도 많은 사람은 자신의 것, 우리의 것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뻔한 이야기를 기대하였다. 뭐 그리 특별한 것 없는 성공담이라 생각했다. 맥도널드를 성공적인 기업으로 일궈낸 레이 크록의 말을 빌리자면 사업가는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라고 한다. 저자는 목숨 걸고 사업을 키워 온 사람이다. 그의 성공담이 멋진 과장이 아닌 살아있는 교훈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그 생명력이 데스밸리에서 두려움과 맞서는 많은 초기 사업가들에게 전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모두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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