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3 소년이 온다 - 한강 /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2002년 5월이었을까, 춘천의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께서 갑자기 책을 덮으시더니 지난 날 자신의 1980년대를 말해 주었다. 지금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고 있지만 당시엔 ‘광주사태’란 표현으로 국민을 우민화했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당시의 광주를 몰랐다. 대개 언론은 광주의 폭력조직과 불량배가 시민을 선동하여 군인과 대치하고 있다 말했다. 이 모든 것은 북한군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의 지휘하고 있다는 둥 지금 들으면 참으로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 광주를 폄훼했다. 선생님의 80년대는 그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신군부가 시민에게 저지른 참상과 통제된 언론, 이에 부역한 권력집단의 동조, 이를 방조한 지식인 등 그것이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왜곡되어 일반 시민에게 전해.. 2024. 11. 3.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 오지랖 넓은 호구가 사무치게 그립거든, ‘오죽했으먼, 글겄냐!’, ‘아버지는 누가 등쳐먹는 호구가 아니라 자원한 호구였다.’, ‘사무치게 그립다.’ 위의 세 문장 중 앞의 두 문장은 주인공(아버지)의 것이며, 마지막 문장은 화자(딸)의 것이다. 이 세 개의 문장을 결합하면 인생이 된다. 우리의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다. 이 세 문장은 소설이 내게 남겨준 과제였다. 이 문장 사이에 공간을 채워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였다. ‘오죽했으면,’에는 결과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이미 벌어진 일에 자기 위로를 함축한 이 표현은 뒤에 올 문장이 부정적일수록 그 의미를 더한다. 정확히 말하면, 발생한 결과가 직접 체험한 내용일 때, 그 고통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경험의 언어이다. 그래서 ‘오죽했으면’이란 표현은 아버지의.. 2022. 11. 6.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똘스또이 /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추석 연휴에 보게 된 넷플릭스 드라마 의 마지막 편에 이런 영상이 나온다. 등번호 001번 노인이 게임의 우승자인 456번 남자에게 죽음직전 마지막 내기를 제안하는 장면인데, 누군가 자정까지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행인을 구하지 않는다면 노인이 이기는 것이고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면 456번이 이기는 설정이다. 드라마 전편을 모두 보고 바로 책 한 권을 폈다. , 똘스또이의 작품으로 드라마의 메시지를 확장하고픈 욕심에 단숨에 읽어 내렸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시류에 민감하고 출세에 집착하지만, 지극히 일상적이며 평범한 항소법원 판사이다. 그는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업무를 수행할 때는 극도로 조심스럽고 관료적이며 아주 엄격하다. 훌륭한 귀족 가문의 여인과 결혼하여 열여섯 살이.. 2021. 9.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