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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릴케 시집 - R.M.릴케 / 마지막 단맛은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by 박종인입니다. 2021.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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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본 영화, <승리호>에 로봇 업둥이가 릴케의 시집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간략한 배경지식을 습득한 후 <릴케 시집>을 다운받아 수록된 166편의 시를 읽어 보았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사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뮌헨대학을 졸업할 무렵 정신적 후원자 살로메를 만나게 된다. 이후 조각가 로뎅의 문하생인 베스 토프와 결혼하였으나 불화로 별거생활을 하게 된다. <피렌체 일기>, <프라하의 두 이야기>, <시도서>,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형상시집>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1926년 스위스의 한 요양원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다.

 

릴케의 시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몇 편을 옮겨보았다.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축제일 같은 것이다.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길을 걷는 어린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실려 오는 많은 꽃잎을 개의치 않듯이

 

어린아이는 꽃잎을 주워서

모다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데도

머리카락에 앉은 꽃잎을 가볍게 털어버린다.

그러고는 앳된 나이의

새로운 꽃잎에 손을 내민다.”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Du mußt das Leben nicht verstehen>

 

삶을 대하는 릴케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시에 사용된 함축적 언어가 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록 타인의 글이지만 그 속에서 나의 경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갖가지 사물 위에 펼쳐져 점점 넓어지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마지막 테두리를 아마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그려 보리라.

 

나는 신(神)의 둘레를, 태고의 탑 둘레를 빙빙 돌고 있다.

천 년이나 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모른다. 내가 한 마리의 매인 지,

하나의 폭풍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대단한 노래인지”

<갖가지 사물 위에 펼쳐져, Ich lebe mein Leben in wachseden Ringen>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앎이 가난에서 오며, 가난이 넘쳐난다는 것을.

이제는 가난한 사람이 혐오스럽다 하여

내던져지거나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뜯겨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꽃의 본성이 그렇듯이

뿌리를 펴고 일어서서 멜리사처럼 향기를 풍깁니다.

그리고 그 잎은 가장자리가 깔쭉깔쭉하며 부드럽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Du, der du weißt>

 

가난은 비움을 남기는 동시에 그 빈 곳에 무엇인가 채워지는 충만함을 더한다고 생각된다.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 Herbsttag>

 

안락함을 버리고 고독을 선택하였지만 마지막 단맛은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해달라는 기도가 릴케의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느끼게 한다.

 

“고독은 비와 같다.

저녁을 향해 바다에서 올라와

멀리 떨어진 평야에서 언제나 적적한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하여 비로소 도시 위에 떨어진다.

 

밤도 낮도 아닌 시간에 비는 내린다.

모든 골목이 아침을 향해 향할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체와 육체가

실망하고 슬프게 헤어져 갈 때,

그리고 시새우는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침대에서 잠자야 할 때,

 

그때 고독은 강물 되어 흐른다···.”

<고독, Einsamkeit>

 

시로 표현된 함축적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의 유희가 아닌 듯하다. 다른 장르에 비해 시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읽는 이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는 확장성에 있다.

 

인생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거나, 자아를 찾으려는 수고스러움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면 릴케가 전하는 메시지가 읽는 이의 언어로 녹아져 흡수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짧은 리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승리호>의 장면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비록 피부를 이식받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은 여전히 로봇인 업둥이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감정이라면,

릴케가 느꼈던, 릴케가 전하는 사소한(?) 감정들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깨닫는 새해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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